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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aysia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친절: 목발 짚고 외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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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교통사고로 다리 골절상을 입고

목발을 짚고 다녀요. 

 

퇴원 이후로 계속 숙소 안에만 있다가

며칠 전에는 수술 경과를 보기 위한 검진이 있어서

외출을 해야만 했답니다. 

 

혼자 목발을 짚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검진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많이 되더군요. 

 

 

그리고 드디어 검진날. 

그랩을 부르고 서둘러 그랩 승차지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평소 걸음이라면 2-3분이면 갈 거리가

목발을 짚으니 너무나 멀었어요. 

 

한 절반정도 왔을까요.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거센 비가 쏟아졌어요. 

 

우산도 없고, 어디 잠깐 비를 피할 곳도 없는데

비가 더 거세져 옷도 머리도 젖고

설상가상으로 저는 아직 그랩 지정 장소까지 못 갔는데

그랩이 도착을 했다고 하고

 

검진을 취소해야 하나 난감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차 한대가 멈추더니

10대로 보이는 한 남자애가 우산을 가지고 제게 다가왔답니다. 

 

처음엔 제가 부른 그랩의 기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인 것 같았어요. 

 

그 친구는 영어를 못하고 저는 말레이를 못해서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그랩 앱을 보여주었더니 상황을 알아 차리고

그랩이 제가 있는 장소로 올 때까지 우산을 씌워 주었어요. 

 

초면의 행인에게 보여준 친절이 감사해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고 택시에 탔는데도

마음에 빚을 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택시를 탔는데

병원에 도착하자 또 하나의 난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택시에서 내려서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계단이 생각보다 너무 높았어요.

비가 오지 않으면 한 발로 뛰어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비가 오니까 목발이 미끄러질 것 같아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를 태워준 그랩 기사분은 가지 않고

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부축을 시도하다가

제가 계단을 못 올라가는 걸 보고는

병원으로 성큼 들어가더니 휠체어를 빌려와서

저를 태우고 병원 안까지 휠체어를 밀어 주셨어요. 

 

라이드 하나라도 더 할 시간에 쫒기는 분일텐데

다 왔다고 가버리지 않고 병원 안까지 들어가게 도와주신 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했습니다. 

 

병원 검진이 끝나고 또 그랩을 불렀는데

기사분이 제가 목발을 짚은 걸 보고는

차에서 내려서 다가오더니

약봉지도 들어주고 차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축해 주어서 무사히 탈 수 있었어요. 

 

 

검진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비를 쫄딱 맞고 오며 가며 시달린 탓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여행을 왔다가 다치고, 거동이 힘든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면서도

각박한 세상에서 친절한 사람을 하루에 세 명이나 만났다는 사실이

마치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어요.   

 

이 곳으로 여행을 오기 전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순수하고 정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정말 그렇구나 하고 느꼈는데

최근에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더욱더 여기에 공감하고 있어요. 

 

천천히 오라며 엘리베이터에 탈 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 

떨어뜨린 목발을 주워주는 사람, 다쳤다고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해 주는 호스트,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안타까워 해주는 사람들까지

아픈 일상 속에서도 크고 작은 친절과 배려를 만나며

이 곳에는 아직 정 많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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