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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15년차에 느끼는 점

by 미리온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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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캘린더를 보다가 제가 미국에 살게된지 올해로 무려 15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짧지 않은 시간을 미국에서 살아온 지금 시점에서 느끼는 점들을 몇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글이라는 점 강조드립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나라

요즘 부쩍 미국은 건강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나라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미국의 의료체계는 비효율적이기로 악명이 높지요. 미국에서 응급실 한번 갔다가 수백만원이 청구되었다 등의 호러 스토리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20대였고 건강했던 유학 초기에는 그저 남의 일 같기만 했어요. 크게 아픈 곳이 없으니 병원에 갈 일이 없었을 뿐더러 워낙 유학 생활이 바쁘다보니 정기 검진하러 시간내기도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년간 병원 출입이 잦아지게 되면서 미국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규모가 작긴 하지만 도시이고 의료 분야가 발전해서 병원들이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진료예약을 잡으려면 2-3주가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허다해요. 얼마 전에 CT 촬영을 해야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제가 처음에 예약한 곳을 허가하지 않았고, 이걸 저에게 예약날이 임박해서야 알려주어 다른 곳으로 다시 예약을 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예약이 다 차서 또 2주 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결국 CT 한 장 찍는데 두달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의료비는 의료보험이 있어도 부담스럽습니다. 미국 개인파산의 60%가 의료비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조금 살다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아플 때 늦지 않게 치료를 받는다는 어쩌면 너무나 기본적인 일이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힘들 수가 있어요. 이민이나 유학 초기이신 분들 중 젊고 건강하신 분들은 이런 문제가 아직은 크게 와닿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료환경이 내 삶의 질, 이민 생활에 대한 만족도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글 보시는 분들 모두 미국에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출처: Pixabay>

재테크

제가 후회하는 일들의 하나는 유학시절에 재테크를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 경우 석사와 박사 과정 모두 과에서 펀딩을 받아서 다행히 제 힘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원생에게 주는 펀딩 자체가 작아서 (흔히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준다고 하죠) 렌트비, 공과금, 식비 등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없었던 것이 정신적인 여유였던 것 같습니다. 학업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돈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이라도 투자를 했었더라면 복리의 힘을 빌어 자산을 더 불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시작하는지라고 하잖아요. 다행히 졸업 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투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공격적으로 투자와 저축을 해오며 지난 공백을 만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유학 시절을 생각하면 투자를 하지 않고 보내버린 몇 년의 시간들이 아쉽네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S&P 500 ETF를 매달 조금씩이라도 사모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10대 20대 분들이 일찍부터 자산 불리기에 관심이 많으신데, 앞으로 투자할 시간이 많으신 것이 부럽습니다.  

한국어 능력 퇴화

유학 시절 내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저는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고 매일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최소한 일상과 직장 생활에 무리가 없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한데 최근에야 자각하게 된 것은 제 한국어 능력이 많이 퇴화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할 때 버벅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진작 눈치채야 했었는데, 최근에 블로그를 시작하고 한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쓰려고 하는 표현이나 단어들이 영어로는 생각나는데 한글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를 때가 많고, 띄어쓰기도 많이 헷갈립니다. 이 글 역시 검색을 해가며 최대한 정확히 쓰려고 했지만, 아마 어색한 표현이나 틀린 띄어쓰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지난 번에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신문이나 뉴스에서 하는 말들이 한번에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이거 좀 익숙한 느낌인데, 하면서 생각해 보니 바로 미국 생활 초기에 많이 느꼈던(그리고 지금도 가끔 느끼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는 아는데 전체 문장의 뜻은 아리송한, 그 느낌이었답니다. 게다가 한국 생활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들도 업데잇이 안되다 보니 문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한국어를 안쓰니 퇴화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자라오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제 정체성의 일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도 듭니다. 앞으로 한국말로 열심히 글을 쓰고 소통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읽기 공부

 

이상으로 미국 생활 15년 차에 느끼는 점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이민 시절 초기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중요해진 사항들이었고 돈, 건강, 정체성 등의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네요. 외국에서 사시는 분들, 이민 생활은 초기에도 무척 힘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방식으로 힘들어지는 것도 있네요.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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